Interview with Conceptzine

Interviewer: 정세정 / November 15, 2017
Featured: Conceptzine - Vol.52 <Gallery>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소개 부탁드려요.

그림 그리는 사람 김대현입니다. 무나씨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고요. 서울에서 태어나 살아왔습니다. 현재는 프랑스의 작은 마을에 위치한 레지던시에 머물며 작업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부터 노르웨이, 태국, 미국, 프랑스 레지던시를 옮겨가며, 새로움을 찾기 위해 여행하고 있습니다.

Q. ‘무나(moonassj)씨’라는 이름은 어떻게 지은 거예요?

처음에는 무아無我라는 불교 용어에서 착안한‘무나’라는 작가명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름으로 작은 수필집을 냈고, 그 시절 친구들이 무나-씨라 불러주는 것이 좋아 계속해서 사용하고 있습니다.

Q. 무나씨 드로잉 시리즈에 대한 소개 부탁드려요.

대학 졸업을 앞두고 나만의 화풍과 이야기를 찾고 싶었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검은색을 사용하고, 내가 관찰하기 좋아하는 감정과 생각을 그리고, 언제든 편하게 그릴 수 있는 작은 크기의 평범한 도구를 사용하자-라는 하는 몇 가지 규칙으로부터 이와 같은 흑백의 인물 그림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Q. 그림의 주제가 될 소재들은 어떤 과정으로 찾나요?

산책을 자주 합니다. 걷는 과정 중에 머릿속에 생각이 흘러들어오고 나가도록 놔두고, 좋은 생각이 있으면 붙잡아 책상 앞에서 좀 더 생각해보고, 글로 적어봅니다. 자기 전에 머릿속에서 그림을 떠올려보고 좋으면 스케치를 합니다. 그 생각들이란, 되새겨볼 만한 추억들이기도 하고, 어제 나눴던 대화이기도 하고, 불현듯 스치는 이미지이기도 합니다. 


Q. 그림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모습이 독특해요. 이런 캐릭터는 어떻게 만들게 됐어요?

고려, 통일신라의 불화를 좋아했습니다. 얼굴은 아마 부처의 얼굴에서 영감을 받았을 것입니다. 인물은 최대한 특색 없이, 성별과 신분을 알 수 없는, 인간의 원형을 표현하길 바랐습니다. 

Q. 그림을 그릴 때 주로 어떤 도구를 사용하나요?

초기에는 펜과 마커를 주로 사용했고 최근에는 먹과 붓을 주로 사용합니다. 사실 가까운 곳에서 구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떤 도구이든, 어떤 검은색이든 사용합니다.

Q. 흑백만 사용해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가 궁금합니다.

흑과 백 사이에 수많은 색이 있기도 하고요. 표현하고자 하는 것을 표현 하는 데에 아직은 불편함을 느끼지 못해서, 색이 필요하지 않습니다. 색을 선택하느라 시간을 낭비하고 싶지 않고요. 

Q. 작가님에게 검은색은 어떤 의미를 가지는 색인가요?

최초로 인간이 이름 지은 색은 아마 흑과 백이었을 것입니다. 태양 빛을 받아 빛나는 사물들이 사실 본연의 색을 발하는 것이 아니듯, 색은 언제나, 언제든 변하기 마련입니다. 흑백이 사물의, 세상의 본질을 표현하는 데에 더 가까운 근원적인 색이라 생각해서 좋아하는 것 같습니다. 

Q. 가끔은 검정이 아닌 다른 색을 더해서 그림을 그리고 싶을 때도 있나요?

색을 더하고 싶다기보다는, 색을 더 빼고 싶습니다. 다른 느낌의 검정을 찾고 싶습니다. 

Q. 작품을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니 디테일이 눈에 띄더라고요. 작업하실 때 큰 공을 들일 것 같아요. 디테일한 작업을 가장 힘쓴 작품은 어떤 작품인지 궁금해요. 

큰 공이라기보다는 긴 시간입니다. 밀도가 높은 그림에는 더 많은 시간을 쏟고요, 좋아하는 그림일수록 더 많은 밀도를 갖습니다. 더 오래 그 그림과 함께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그림에 담은 긴 시간으로 보는 사람들을 오래 붙잡아 두고 싶어서입니다. 가장 최근에 그린 ‘생각의 경도’ 라는 작품에도 오랜 시간을 담았습니다. 

Q. 작품과 작품명을 번갈아 보면서, 일상의 소재를 참신한 그림으로 풀어내는 작가님의 표현력이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끊임없이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떠올리는 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이를 위해 어떤 노력을 하나요?

욕심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노력하지 않으려고 노력한다고 들릴 수도 있겠습니다. 욕심내지 않을 때 늘 좋은 생각이 떠오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이 어떤 것인지 말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마도 그래서 좋은 생각들은 세수하거나, 밥을 먹거나, 어딘가로 이동하는 도중에 많이 떠오르는가 봅니다. 유일하게 노력하는 일은, 그 생각을 붙잡아 두려 기록하는 일입니다. 

Q. 메종키츠네, 로모그라피와 같은 세계적인 브랜드와 협업하시고, 뉴욕타임스의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하시고… 해외에서도 다양한 작업을 진행 중이시더라고요. 그래서 으레 외국에서 살다 오신 분일 거라 짐작했는데, 서울에서 나고 자라 한국미술을 전공했다는 작가님의 프로필을 보고서 적잖이 놀랐어요. 한국을 넘어서 해외에서도 인정받는 기분이 남다를 것 같아요.

노력하지 않으려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정받으려 하지 않으면 인정받는 것 같습니다. 국경을 넘어선다는 개념도 어쩌면 옛날이야기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보다 어린 세대들, 특히 어려서부터 세계인과 소통하는 데에 익숙한 친구들은 아마, 그런 물리적 한계가 애초에 머릿속에 없으리라 생각합니다. 한국미술이라든지, 순수미술, 상업미술 등을 나누는 것은 여러 면에서 큰 의미도 없고 제약도 되지 않는 시대라 생각합니다. 인정하거나 인정받는 일도 수준과 경계를 나누는 마음이 있을 때 가능한 일이겠지요.

Q. 무나씨 드로잉 시리즈를 통해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나요?

저의 그림을 보는 사람들이 그림을 빌려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마음을 바라보는 일이 때로는 힘들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마음속에 일어나는 모든 쾌, 불쾌한 감정들 하나하나가 다 소중하다는 것을 느꼈으면 좋겠습니다. 마음속에 휘몰아치는 감정들이 치료해야 할 고통이나 병이 아닌, 흥미로운 탐구대상으로 여기길 희망합니다. 저마다 느끼는 감정들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고유의 아름다움이라는, 저의 생각을 전하고 싶습니다. 

Q. 반대로 작가님에게 그림은 어떤 의미인가요?

저에게 그림 그리기는 일종의 자정이며, 마음-관찰-일지입니다. 나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공부이고, 내가 가진 보편적 인간성을 이해하고 극복하기 위한 수련이며, 그를 통해 다른 사람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Q. 컨셉진 이번 호 주제는 ‘어른’이에요. 작가님은 어떤 어른이 되고 싶어요?

어른 같지 않은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어른은 이렇다 하는 규범에 얽매이지 않은 그런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제가 되고 싶은 어른은, 정체되지 않은, 여전히 흐르고 여전히 자라나는 어른입니다. 늘 실수하고 매번 창피함을 겪더라도 겁내지 않고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수줍은 어른입니다.